“최근 경제 상황 변화로 기업이 국제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더욱 커졌습니다.”김우재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왼쪽·사법연수원 38기)는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예상했다. 그는 “계약을 맺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경제 상황이 펼쳐지면서 당사자들이 각자 유리한 방식대로 계약 내용을 해석해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인플레이션 영향을 크게 받는 건설·조선·금융 등의 업종에서 분쟁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로펌의 김상철 변호사(오른쪽·변호사시험 1기)는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등 첨단기술 산업에서 분쟁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호황기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내용이었는데 최근 ‘기술 침해’라며 다투는 사례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며 “경기 침체로 기업 간 생존 경쟁이 더 격해진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태평양은 2002년 국제중재팀을 만든 뒤 외부 전문가 영입과 자체 인재 육성을 통해 20년간 이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대형 분쟁에서 연이어 성과를 내며 오랜 투자의 결실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이 로펌은 지난 8월 말 한국 정부가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에서 당초 제기된 금액(46억7950만달러)보다 대폭 축소된 2억1650만달러(약 2800억원)의 배상 판정을 받는 데 기여했다. 지난 10월 말엔 인천 송도 국제업무단지 개발을 두고 포스코건설이 미국 부동산개발회사 게일인터내셔널과 벌인 23억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 분쟁에서 포스코건설의 승소를 이끌어냈다.
국제중재 사건의 대형화도 최근 두드러진 변화다. 김우재 변호사는 “기업들이 분쟁 경험을 쌓으면서 중재에 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규모가 작고 단순한 사건은 중재로 끌고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그러다 보니 각종 현안이 응축된 대형 분쟁이 중재로 다뤄진다”고 말했다. 김상철 변호사도 “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승소할 만하다고 판단하면 두려움 없이 중재를 제기하면서 대형 분쟁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우재 변호사는 정부가 ISDS에 잇달아 휘말리는 데 대해선 “국가 경제 성장과 함께 외국인 투자 유치도 활발해진 이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분쟁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선 정부나 기업이 의사결정을 할 때 왜 그렇게 했는지, 관련 계약서 내용을 준수한 것인지, 어떤 법적 근거가 있는지 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는 총 10건이며 이 중 6건은 아직 결론이 안 난 채 진행 중이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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